[한겨레] 관상용 아닌 실전용…근육의 쓸모

철인의 탄생
10시간 가동 ‘튼튼한 엔진’ 필요
케틀벨 이용한 중심부 근육 단련
4년만에 달린 풀코스…25분 단축

기자정인선
  • 수정 2024-01-06 08:23
  • 등록 2024-01-06 07:00
서울 성산동 ‘파워존 에이치제이(HJ)’에서 케틀벨을 이용해 당기기 훈련을 하는 모습.
서울 성산동 ‘파워존 에이치제이(HJ)’에서 케틀벨을 이용해 당기기 훈련을 하는 모습.

수영장에 오래 다니다 보면 “마스터스 대회에 나가 보자”는 제안을 받게 된다. 올해로 수영인이 된 지 햇수로 17년째 ‘고인 물’이지만, 나는 아직 한 번도 그 제안을 덥석 문 적이 없다. 대부분의 마스터스 수영 대회가 50~200m 안팎의 단거리 종목 위주로 구성돼 있는데, 단시간에 폭발적인 힘을 끌어다 써야 하는 단거리에는 영 자신이 없었다.

어쩌면 마라톤·철인3종과 같은 장거리 종목에 관심을 두게 된 것도, 순간적인 힘을 발휘하지는 못해도 얇고 길게는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는지 모른다. 단거리 종목을 잘하는 데 도움이 될 근력 운동에 20대 내내 재미를 붙이지 못한 탓도 크다. ‘허벅지 힘을 기르면 발을 더 펑펑 차며 남들을 쉽게 앞지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몇 차례 헬스장에 등록해 보기도 했지만, 길을 달리거나 물살을 가르는 일에 비해 혼자서 무거운 무게를 들었다 놨다 하는 일은 그저 지루하게만 느껴졌다.

처음으로 느낀 근력운동 재미

직장인이 되어 주머니 사정이 나아진 뒤 본격적으로 피티(개인 맞춤 훈련)를 받아보기도 했다. 회사 앞 헬스장의 트레이너는 “감량이 아니라 다른 운동을 더 잘하는 게 목표”라는 내 요청에도 “이 동작을 해야 등살이 빠진다”, “여성 분들은 가슴 근육이 커지는 걸 싫어해서 저 동작은 잘 안 시킨다”는 둥 신체의 기능이 아닌 모양에 초점을 두고 지도했다. 1년 가까이 피티를 받자 체지방이 줄고 보는 사람마다 “날씬해졌다”고 말했지만, 정작 수영이나 달리기를 더 잘하는 몸이 됐다는 느낌은 크게 없었다.

2022년 가을, 운동을 좋아하는 회사 동료 이정연 기자에게 이런 고민을 말하자 그는 자신이 다니는 체육관(서울 성산동 ‘파워존 HJ’)을 소개했다. 옛 소련 군인들의 훈련법에서 영감을 받은 ‘스트롱퍼스트’ 프로그램에 기반해, 케틀벨과 바벨 등의 도구와 보디 웨이트(장비 없이 자신의 몸무게를 활용하는 것)를 이용한 근력 운동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체육관이다.(참고로 ‘파워존’이란 허벅지와 배·허리·엉덩이로 이어지는 몸의 중심부를 뜻한다.) ‘여성, 성 소수자 친화적 공간’을 표방하는 이곳에서 내 몸이 어떻게 보일지보다 어떻게 쓰일지에 집중한 훈련을 하다 보니, 10년 넘게 재미를 못 붙인 근력 운동이 처음으로 재미있게 느껴졌다. 1년이 넘도록 일주일에 한두 번씩 꼬박꼬박 출석했다.

꾸준한 파워존 훈련의 효험을 제대로 느낀 건 지난해 10월 4년 만에 나간 풀코스 마라톤 대회에서였다. 다른 운동에 쓰는 시간이 늘면서 지난해 달리기에 투자한 시간이나 실제로 달린 누적 거리가 이전보다 줄어들었는데도, 4년 전 5시간보다 25분이나 줄어든 4시간35분에 결승선을 통과했다.

대회를 마치고 복기를 해 보니, 줄어든 기록보다 큰 변화는 따로 있었다. 4년 전엔 완주에는 성공했지만, 자주 달려 보지 않은 하프 지점(21㎞)을 넘어가면서부터는 팔과 어깨·등·허리 등 상체 곳곳에 통증이 느껴졌다. 중간중간 멈춰 서서 스트레칭하지 않으면 계속 달리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 대회에서는 상체 통증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 잡동작 없이 오직 달리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서울 성산동 ‘파워존 에이치제이(HJ)’에서 매달리기 훈련하는 모습.

서울 성산동 ‘파워존 에이치제이(HJ)’에서 매달리기 훈련하는 모습.

케틀벨 이용해 근력·지구력 동시에

특히 여름 내내 몰두한 ‘풀업(턱걸이) 챌린지’ 효과가 컸다. 파워존 수강생들은 각자 ‘스불재’(‘스스로 불러온 재앙’의 줄임말로,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사서 고생한다는 의미)라고 부르는 개인 프로그램을 짜서 정규 훈련에 보탠다. 나를 포함한 몇몇은 여름이 가기 전 8주 동안 매달리기, 당기기, 웅크린 채 버티기 동작들로 구성된 풀업 챌린지에 나섰다. 각자 10만원씩을 걸고서 턱걸이에 성공하면 10만원, 일주일에 3번씩 꼬박꼬박 훈련하고 매달리기 시간을 두 배 이상 늘리면 5만원을 돌려받는 프로그램이었다. ‘이걸 한다고 안 되던 턱걸이가 될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꾸준히 시도라도 하면 5만원이라도 돌려받을 수 있으니 꾸역꾸역 훈련했다. 기간 안에 턱걸이엔 성공하지 못했지만, 여름 동안의 훈련이 뜻밖에 장거리를 더 편안하게 달릴 수 있는 몸으로 만들어 준 게 분명했다.

전문가들도 철인3종 훈련에서 수영·사이클·달리기뿐 아니라 저중량·고반복 훈련 위주의 근력 운동이 빠져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짧게는 서너 시간에서 길게는 열 시간 이상 몸을 움직이려면 혈액과 산소를 신체 곳곳에 지치지 않고 전달할 수 있는 튼튼한 ‘엔진’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트라이애슬론 전문 매체 ‘트라이애슬릿’도 관절 부상 없는 장거리 운동을 위해 적절한 근력 운동을 권고한다. 골밀도를 높이고 근육량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또 젖산 역치를 높여 고강도 운동을 더 오래 지속하게 하고, 자전거 페달이나 지면에 힘을 균일하게 전달해 몸이 피로를 덜 느끼도록 한다.

케틀벨을 이용해 근력과 지구력을 동시에 기르는 훈련법도 있다. 미국의 운동 코치 데렉 토슈너가 장거리 운동선수들을 위해 고안한 ‘스내치 워킹 프로토콜’이다. 바닥에 놓인 케틀벨을 허리춤까지 들어 올린 뒤 빠르게 팔을 펴며 머리 위까지 올리는 스내치 동작과 앞으로 걷는 동작을 한 번씩 교차해 수행하는 프로그램으로, 여성 8∼12㎏, 남성 12∼20㎏ 무게 케틀벨을 20∼50분 동안 한 번도 내려놓지 않는 걸 목표로 훈련하면 된다. 체육관에 가서 훈련하거나 밖에 나가 달릴 시간이 없을 때 20분이나마 짬을 내 이 방법으로 훈련하면 온 몸에 땀이 뻘뻘 난다. 토슈너 코치는 “따로 달리기 마일리지를 늘리지 않고서도 경기 수행 능력을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주일에 한두 번 훈련하라”는 권고와 달리 지난 1년간 한 달에 한두 번 생각날 때마다 하면서 아직 큰 효험은 느끼지 못했지만, 이번 겨울엔 스내치 워킹을 ‘스불재’로 시도할 계획이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한겨레신문 스포츠팀 기자. 일하지 않는 시간엔 요가와 달리기, 수영, 사이클, 케틀벨 등 각종 운동을 한다.